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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109) ‘국민주권’ 코스프레(修辭: 헛소리), 국민을 관료의 통제하에 두고 그 입을 봉하는 한국 위정자들

최자영 | 입력 : 2025/11/02 [21:05]

경찰은 ‘통제’할 것이 아니라 ‘시민 경찰’ 뒤에서 보충적으로 개입해야
공직자가 신뢰받도록 스스로 노력하라는 것은 외부 견제 안 받겠는다는 속내
재판소원 제도 반대하는 이낙연은 공권력의 위헌적 오남용 조장
사법권력 오남용의 궁극적 책임은 조희대 이전에 국민 자신의 정치적 무기력에 물어야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주권’과 ‘민주’를 표방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그가 외치는 ‘국민주권’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수사적(修辭的) 기교로 보인다. 문제는 주권과 민주를 외치는 이재명의 실제 행보가 구체적 사안(디테일)에서 ‘국민주권’과 거꾸로 간다는 점이다.

이재명은 “경찰의 민주적 통제”, “국민이 경찰을 신뢰하게 하는 경찰의 혁신“을 말했다.(한겨레, 2025.10.22.) 이재명이 국민주권을 소리 높여 외칠 때도 국민주권이 현실이 아니듯이, 그가 경찰에 민주적 통제 강화 라고 말할 때도 그 ‘민주’는 현실이 아니다. ‘통제’와 그 통제하는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주문하는 이재명에게 결여한 것은 ’민주‘에 대한 이해이다.

이재명의 ‘민주적 통제’ 경찰론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첫째, 이재명은 ‘민주’와 ‘통제’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민주’와 ‘통제’는 그 자체로서 서로 모순되는 것이며, 함께 하기 어려운 것이다. ’민주‘는 국민 민중이 주인이라는 뜻인데, ’통제‘는 그 주체가 관료이기 때문이다.

’민주적 통제’라고 할 때, 방점이 ‘민주’와 ‘통제’ 중 어디에 가 있는 것인지가 자못 불분명한 데가 있는데, 이재명의 경우에는 ‘민주’가 아니라 ‘통제’에 방점이 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재명이 말하는 ‘경찰의 혁신’은 경찰 관료가 중심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경찰을 신뢰하거나 말거나 하는 들러리로서, 현실적 권력 구조 안에서 구체적으로 발언권을 행사하는 주제가 아니라 객체적 존재로 설정되고 있다. 경찰의 혁신에 대해 발언, 감찰, 견제할 수 없는 국민이 경찰의 통제를 받기만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관료주의이다. 이재명이 ‘국민주권’ 아닌 것을 ‘국민주권’이라 미화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않은 경찰의 통제를 ‘민주적 통제’로 미화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민주 경찰은 ‘통제’가 아니라 보충적으로 작동하고, 시민의 뒤로 물러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부족한 인력의 경찰이 무엇을 통제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민주를 그르치는 것이다. 국민은 시민으로서 각기 자신을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정당방위의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당방위는 자력구제(스스로 자기를 보호하는 것)와 타인구조로 이루어진다. 자력구제란 공적 치안권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저 신개척지 아메리카 서부의 ‘건맨-카우보이[총으로 무장한 소 지킴이 개인)’에게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수없이 발생하는 범죄와 턱없이 부족한 경찰 공권력은 서부의 무법천지를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자력구제뿐 아니라 타인구조의 정당방위도 당연히 합법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부당 행위에만 저항할 수 있고, 옆 사람이 당하는 부당 행위에 도와서 구조할 수 없다면, 연대에 의한 사회적 공정을 추구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옆 사람의 불행에 눈 감고 귀 막는 파렴치한 이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의 법제와 사법관행은 타인구조를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연대를 애초에 무산시키려는 일본 식민지배와 독재 전통의 잔재이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 막는 것은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앞서, 시민에 의한 정당방위의 자력구제 및 타인구조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오히려 국민에 대한 관료 공직자의 지배 체제를 구축하려는 관료주의의 전통이다.

캄보디아 사태는 캄보디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캄보디아에서만 양국 공조 단속반을 만든다고 해서 다른 곳, 또 다른 범죄까지 근절되는 것은 아니다. 수없이 발생하는 범죄를 다 통제할 능력도, 인력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공권력 경찰이 무엇을 통제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주제넘은 짓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것 자체가 정부가 국민 앞에 벌이는 일종의 사기극이다.

둘째, 권력을 오남용한 공직자에 대한 즉각 처벌의 개념이 이재명에게 없다. 그 처벌은 같은 공기관 관료들이 스스로 할 것 같이 시늉하며 솜방망이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 민중이 가하는 것이다. 민주는 경찰, 검찰, 판사들이 자체 변화하기만을 국민 민중이 마냥 앉아서 기다려야 하는 제도가 아니다.

이재명은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경찰로 확실히 변모하려면 끊임없이 확신하고 또 변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에 바람직하게 변모하지 않았을 때, 혹은 그 경찰의 통제가 민주적이지 못했을 때 등에 대한 대책이 없다. 경찰이 스스로 변모해야 하는 것이라면, 주도권은 국민이 아니라 관료인 경찰에 놓인다. 이는 마치 썩어빠진 검찰 및 사법 권력에게 스스로 변화해서 국민의 신뢰를 받으라고 주문하는 것과 같다.

이 같은 이재명식 ‘통제’의 논리는 이재명뿐 아니라 한국 위정자들에게 보편적이다. 문형배(전 헌법재판소장 권한 대행)가 조희대, 지귀연을 향해 쓴소리하면서, “자기들이 불신을 자처해놓고 재판의 독립을 이야기하면 그게 먹히냐, 그래서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라, 그러면 국민들이 법원에 대해서 신뢰를 할 거 아니냐” 등 취지의 발언을 했다. 내란, 역모의 재판을 무슨 일반재판하고 같이 맡아서 하면서 신속하게 하지 않고, 또 헌법재판소도 다 중계한 재판을, 거기에 무슨 국가 비밀이 있다고, 중계를 못하냐, 쿠데타가 무슨 비밀이냐 하는 것이다.

최혁진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검찰에 대해 “(검찰) 여러분이 통탄하시고 내부적으로 논의하셔서 국민에게 믿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주셔야 하는데, 광주고등검찰청장님, 중립을 지킨다라는 말로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한 것 또한 그 같은 맥락이다.

문형배가 사법부에 대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라, 그러면 국민들이 법원에 대해서 신뢰를 할 거 아니냐” 하는 것, 최혁진이 “내부적으로 논의하셔서 국민에게 믿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주셔야 한다”는 것 등은 외부적 징계나 감찰의 제도가 없거나 있어도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또 “국민들을 납득시킨다”는 것은 국민이 검찰을 징계하는 주체가 아니라, 검찰의 행패 여부에 대해 고작 믿거나 말거나 하는 들러리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국민을 한갓 들러리로 설정하는 관료적 통제 국가인 한국에서, 3권은 서로 견제조차 하지 못하고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독주를 모색하고 있다. 안하무인 사법부의 독주, 독재를 눈앞에 두고, 사법부 견제를 위한 헌법소원이 화두에 오르고 있는 판에, 그에 대한 기득권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것이 그러하다.

헌법재판소 재판소원 제도 도입에 반대하여, 이낙연(전 총리)이, 헌법 101조를 들면서,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는 원칙은 삼권분립의 핵심”, “대법원 위에 헌법재판소를 올리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이번 사법 개혁안은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로 판단한 결정을 뒤집고 다른 재판에서도 무죄를 유도하려는 의도”, “나쁜 통치자는 모든 권력을 탐한다. 권력은 암세포처럼 자기 증식하려 한다”, “집권세력은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 차베스를 닮지 말고 미국 민주당을 배워야 한다” 등 발언을 했다고 한다.(MSN 2025.10.22.)

조희대(대법원장), 지귀연(내란 재판 주심 판사)의 절차상 위법 혐의, 계엄에 연루된 한덕수(전 총리), 박성재(전 법무부장관) 등에 대한 영장 기각 판사 등, 다소간 상식을 벗어난 사법부의 독주를 보면서, 사법부에 대한 견제장치로서 헌법재판소에 대한 재판소원제도 도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여론조사에서 도입 지지 의견이 60~70%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된다.

그런데 이낙연은 사법부 견제를 위한 재판소원 제도 자체가 “삼권분립과 헌법에 어긋난다”,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판단을 뒤엎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낙연은 분립된 삼권은 각기 독주해도 그에 대한 견제 장치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고, 또 사법부에 대한 견제 제도가 이재명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 같은 이낙연의 견해는 국민을 들러리로 보는 안하무인적 위정자 일반의 사고를 반증한다. 첫째, 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도 ‘삼권분립’과 ‘헌법’의 이름으로 배격할 권리를 위정자들이 가지고 있다는 관성적 행태이다. 둘째, 나쁜 통치자는 모든 권력을 탐하지만, 그 나쁜 통치자와, 암세포처럼 자기 증식하는 나쁜 권력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낙연은 집권세력이 “스스로 절제”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위정자가 “스스로 절제”하지 못했을 때에 대한 견제 장치의 필요성에 대한 개념이 이낙연에게는 없다.

이낙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민주당 원내대표 김병기는 재판소원 제도를 당론으로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서둘러 밝히는 데 급급했다. 이런 행태는 약 60~70%에 달하는 찬성 국민을 ‘을’로 들러리 세우고, 오히려 재판소원 도입에 반발하는 기득권 사법관료에게 부합하려는 것이다.

한국이 ‘국민주권’, ‘민주’가 아니라 관료 중심의 국가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재명이, 경찰이 국민에 대해 ‘통제’할 것을 주문하는 것, 또 이재명이 경찰의 자체 혁신, 문형배가 사법부에 대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해줄 것으로, 최혁진이 검찰에 대해 ‘내부적 논의’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주문한 것, 이낙연이 집권세력에 대한 ‘스스로의 절제’를 주문한 것, 김병기가 재판소원제도를 당론으로 추진하지 않겠다고 서둘러 설레발치는 것 등이 죄다 국민을 들러리 취급하는 데 기인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국민주권’, ‘민주’의 허사(虛辭: 헛소리)의 미명 아래에서 ‘통제’받는 국민은, 다른 한편으로,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주권자로서의 정치적 발언권을 갖지 못한 채, ‘신뢰’를 하네 마네 하는 공치사의 대상, ‘주인’ 아닌 객(客), 갑(甲) 아닌 을(乙), 들러리로 전락해 있다. 주인이 되려면, 신뢰하지 않았을 때 견제,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그런 것 없이는 만년 객이다.   

국민을 백안시하는 위정자들의 이 같은 권력 지향적 굿판에 대한 궁극적 책임은 급기야 국민 자신들에게로 돌아온다. 이기적 권력 추구의 위정자들을 마냥 믿기만 하고, 자구책을 구하려 염을 내지 않는 수동적이고 무책임하고 스스로를 객체화하는 하릴없는 백성 같은 민중에게로 환원되는 것이다. 아무도 공으로 떡 가져 와 먹여주는 이 세상에 없고, 어떻게든 스스로 두드리고 구하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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