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자제는 개인의 미덕으로 정치, 법의 영역 아니고 현실 아닌 권장 사항
권장 사항은 민주, 일인(독재), 과두 정치에 같이 적용되는 것
민주정치의 본질은 다수결 아닌 소수결에서 구할 수 없고
소수결은 민주정치 아닌 일인, 과두 정치
민주는 ‘설득, 대화’가 아니라 국민 민중이 권력 주체로서 결정권 행사하는 것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파면 의견을 냈던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민주당이 추진 중인 사법개혁안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법관 정원 확대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점진적 접근(신중한 접근)의 필요성을 앞세워, 기실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대법관 증원이 사법부의 독립성과 제도 신뢰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단기간에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해칠 위험이 있다”, “지금은 명확한 제도 변화 설명 없이 대법관 수 확대만 강조되고 있다”, “사법부 문제를 단일 해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복합 질환 환자에게 수술만 먼저 하는 것과 같다”, “사법 개혁도 그 제도를 운영할 사법부의 동의와 참여 없이 강행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등이 그러하다.(MSN, 2025.10.22.)
이어서 그는 “우리가 이 논의를 하는 이유는 국민들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수단을 더 잘 마련하기 위해서이지,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는 게 목적은 아니다”, “상고심 제도를 사실심의 연장으로 볼 건지, 아니면 법률심으로 가져갈 건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한겨레21, 1580호 2025.9.11.)
그런데 문형배의 이 같은 지적은 몇 가지 문제를 내포한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사법권력의 오남용은, 주지하듯이, 상고심뿐 아니라 1, 2심에서도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법률심, 사실심을 막론한다. 지금 상고심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심, 법률심 그 어느 것이 되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뿐 아니다. 상고심의 판결 이유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상고심 자체에 회부하지 않고 기각함으로써 법에 보장된 3심조차 받지 못하게 하는 법과 관행은 무엇보다 판사 인력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대법관 수를 30명(26명으로 축소) 늘리자는 것은 우선, 졸속으로 서류도 보지 않고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뚝딱 ‘유죄취지 파기 환송’한 대법원의 만행 혐의에 대한 단기 처방이다. 개혁은 한꺼번에 무슨 일정한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당면한 과제부터 하나씩 처리하면 된다. 문형배 자신도 말하듯이, 점진적으로 하자는 것은 한꺼번에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문형배의 의견과는 반대로, 사실 30명만 늘려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문형배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수단을 더 잘 마련하기 위해서이지,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는 게 목적은 아니라고 했다. 이것은 문형배가 대법관 30명 증원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수단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급기야 그는 대법관 30명(26명) 증원을 두고 ‘대폭’ 늘리는 것으로 규정했고,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해칠 위험”이 있는 것이라고 촌평했다.
문형배의 의견처럼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지 않으면, 공정한 재판 하는 데 도움이 되나? 그것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권력의 오남용은 숫자를 불문하고 관행처럼 퍼져있기 때문이다. 30명을 늘린다고 해서 다 고쳐지는 것도 아니지만, 안 늘린다고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왜 숫자 늘리지 말라고 문형배가 그렇게 목을 매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핵심은 대법관의 수가 아니라, 3심에 공히 의혹받는 권력의 오남용과 부패에 있다. 문형배는 숫자에 목맬 것이 아니라, 부패한 사법권력을 어떻게 정화할 것인가에 대해 의견을 내야 했다.
심도 있는 개혁은, 문형배도 말했듯이, 점진적으로 하면 된다. 그 점진적 개혁은, 사실심 법률심 여부의 상고심 성격 규명 등 개혁의 내용에 대한 논의보다, 기득권 저항 세력을 어떻게 막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대법원 증원은, 문형배가 규정하는 바, “대법관 수 확대만 강조” 혹은 “단일 해법” 관련한 것이 아니라, 개혁을 시작하는 첫걸음에 불과하다. 한꺼번에 다 고치지 못하니 단계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문형배는 개혁의 주체 관련하여, “사법 개혁도 그 제도를 운영할 사법부의 동의와 참여 없이 강행하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그가 다소간에 대법관 수를 늘리는 데 반대하는 주요 이유가 현 사법부가 반대하기 때문임이라 볼 수 있는 주요 단서가 된다. 여기에 빠진 것이 국민 민중의 존재이다.
사법개혁은 운영 주체(사법 관료)의 동의와 참여 없이는 안 된다고 보는 문형배의 안중에는 국민 민중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그의 사전에 국민은 개혁의 주체로서의 ‘갑’이 아니라, 신속, 공정한 재판을 제공받는 ‘을’에 불과하다. 국민 민중은 썩어빠진 사법계를 개혁하는 주체로 나서지 못하고, 썩어빠진 그 사법계가 법관 증원하는 데 결사코 반대하는 것을, 꿀 먹은 벙어리마냥, 여전히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문형배의 이 같은 비민주적 발상은 민주정치에 대한 그의 일가견에서도 드러난다. “명문화된 규정과 다수결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양당이 협력해야만 법률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한쪽이 밀어붙이면 사회적 저항으로 법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일부 의원의 비위가 드러난다고 해서 정당 전체를 내란동조당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하다”, “헌재가 아닌 국민의 선택, 즉 선거로 판단받아야 할 사안”, “정치 현안 대부분은 보수·진보 대결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며 “극단적 진영 대결을 지양하고, 상식과 절제가 작동하는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 등의 발언이 그것이다.
문형배는 다수결만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않는다고 했다. 다수결 아닌 것은 일인결이나 소수결이다. 국민 민중 대신 사법 운영 주체가 사법개혁에 동의, 동참해야 한다는 것은 문형배가 민중의 다수결을 부정하는 입장에 있음과 맥을 같이 한다. 국민 민중을 배제한 문형배의 입장은 “양당이 협력해야만 법률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발언에서도 똑같이 묻어난다. 양당만 협력(짬짜미)하면 정당하고 실효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그러하다.
문형배에게 국민 민중은 정치에 참여하는 주체가 아니라 선거를 통해 위정자를 뽑을 뿐인 존재로 역할이 한정되어 있다. 내란동조당으로 규정하는 것은 헌재가 아니라 국민의 선택에 의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 국민의 선택은 “선거로 판단받아야 할 사안”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종된 것은 비리 공직자에 대한 처벌이다. “일부 의원의 비위가 드러난다고 해서 정당 전체를 내란동조당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문형배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뒤집으면, 비리 의원은 물론 그 비리 의원을 옹호하는 정당도 바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문형배가 생각하는 국민은 오직 선거로서만 사람을 취사선택할 수 있을 뿐인 간접적이고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문형배는 주권의 국민을 한갓 ‘을’로 전락시켰다.
다수결을 부정하는 문형배의 이 같은 편향적 견해는 비현실적인 당위의 권고로 연결된다. 관용, 상식, 절제의 미덕을 권고한 것이 이것이다. 문형배가 권유하는 이 같은 미덕은 두 가지 문제를 갖는다. 첫째, 이런 미덕은 개인적인 것으로, 정치와 법의 영역이 아니다. 문형배는 정치와 도덕을 혼동했다. 관용, 상식, 절제 등의 미덕은 민주정치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인(독재)정치, 소수의 과두정치(국회 300인의 지배)에도 다 적용되는 것이다. 문형배는 정치를 논하는 곳에 엉뚱한 도덕론을 들고 나왔다.
둘째, “극단적 진영 대결을 지양하고, 상식과 절제가 작동하는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를 교과서적으로 읊조리는 문형배에게는 ‘상식과 절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에 어떻게 할 것인지 대비책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 현안 대부분은 보수·진보 대결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는 문형배식 규정도 별로 신통한 것이 아니다.
정치 현안이 보수·진보 대결이건,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건 간에, 그 성격 규정과 무관하게, 현재 진행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문형배가 “상식을 찾으라”고 주문한다고 해서, 현재 진행되는 이 비상식적 내란의 상태가 저절로 상식을 찾아갈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현재뿐 아니라, 과거에도, 앞으로도, 영원히 인간 세상이 상식에 의해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다.
문형배는 이 탐욕, 비이성, 비상식으로 가득한 한국의 현실을 두고, 한편으로, “상식을 찾으라”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법관 30명(26명) 증원에 대해, “사법부 독립을 훼손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해칠 위험이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문형배의 이 같은 발언은 주객을 전도한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과 신뢰는 사법부 자체가 훼손한 것이지, 법관의 증원에 의해 훼손된 것이 아니다. 법관 증원은 이미 자체 훼손한 사법부 신뢰의 후속 조치로서 이루어진 것이지, 그 원인 제공자가 아니다.
문형배는 자신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하는 이유”에 대해 “제 몸속엔 민주공화국에 대한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그 점에 대해 추호도 의심 말아달라”고 말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한겨레, 2025.10.23.)
문형배의 이 같은 자기 평가에도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문형배는 자신의 진심을 믿어달라고 했으나, 그 진심의 효과를 과대 평가하고 있다. 문형배의 진심이 썩어빠진 사법계가 정화되는 데 도움이 되나? 사법계의 부패는 문형배의 진심과 무관하게 해묵은 것이고, 이대로 가면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문형배는 윤석열 파면에 지대하게 공을 끼쳤으나, 사법계의 부패 관행은 한 사람 우두머리를 파면시켜서 될 일도 아니고, 문형배 개인의 진심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둘째, 그의 몸속에 흐른다는 “민주공화국의 붉은 피”의 정체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문형배는 민주와 공화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양자는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민주는 민중이 궁극적 결정권을 행사하는 정치체제이지만, 공화는 반드시 민주적인 것이 아니다. 로마 공화정은 소수 중심의 귀족 공화정으로 일관했다. 운영 주체로서의 부패한 사법부의 동의와 동참을 주창하고, 그 운영의 객체로서의 국민 민중을 정치의 장에서 배제하는 문형배의 지론은 민주가 아니라, 오히려 귀족 공화정에 가깝다. 그의 몸속에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귀족공화국의 붉은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명문화된 법 규정은 자체로서 실행 능력이 없다. 다만 사람에 의해서 실행될 뿐이다. 문형배의 비현실적 소원과 달리, 그 법을 움직이는 사람은 언제나 절제와 상식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 아니다. 욕심과 지향성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협력할 수가 있나? 문형배는 ‘설득, 대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라고 했으나, 이 또한 민중을 물먹이는 허사(虛辭: 헛소리)이다. 당장에 사법권력 오남용에 의해 피해보는 민중을 두고, 행동이 아니라 ‘설득, 대화’ 하라고 주문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2025.10.22.)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문형배류의 ‘상호협력’, ‘설득, 대화’ 운운하고만 있을 계제가 아니다. 반목하고, 상식과 절제가 통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 대안이 바로 다수결로 해결하는 민주정치이다. 보수, 진보 혹은 상식, 비상식의 대결로 전개되는 정치에서는 다수결 이외의 다른 해결 방법이 없다.
문형배는 개혁 성공의 핵심 관련하여, “일관된 원칙 고수”, “입장 따라 주장 바뀌면 신뢰가 무너진다” 등의 의견을 피력했다.(한겨레, 2025.10.22.) 그렇지 않다. 원칙이란 누가 어떻게 정한 것인지, 그 가치가 여전히 유효한지 등에 대한 검증이 우선해야 하고,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입장은 계속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신뢰 추락은, 있는 원칙도 지키지 않고 부정부패한 사법부의 행태에 원인이 있는 것이지, 원칙이나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 아니다. 변화와 개혁의 순발력은 부패한 사법부의 동의와 동참이 아니라, 국민 민중의 정치적 개입과 결정권에 의한 것이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