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의료의 핵심은 ‘동네병원 주치의’가 아니라 예방의학과 양호(보건, 자연치유[self care])
‘돌봄’ 사업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 및 보건 인력이 중심
간호사는 의사와 같이 개인 개업 허용하고 병원 바깥에서 환자와 직거래할 수 있어야
간병 인력의 처우 개선 없는 ‘돌봄’은 간호의 질 하락과 피간병인의 불이익 초래
‘동네 주치의’를 은퇴 의사로 메꾸자 할 것 아니라 일반의(GP)를 새로 증원, 육성해야
의사들이 지금까지 입에 올리지 않던 용어가 최근 들어 갑자기 회자하기 시작했다. ‘1차 의료’, ‘동네 주치의’ 같은 것들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쪽으로 돈이 돌 것 같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내년 지역사회 '통합돌봄(서비스)제'를 전국으로 확대하여 시행하겠다고 한다. 당장 내년 3월부터 노인이 살고 있는 익숙한 공간에서 ‘의료·요양·돌봄의 통합’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든가, 내년 7월부터 ‘동네병원 주치의’ 제도를 시작하겠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우선 보건복지부가 ‘지역사회 1차 의료 혁신 시범사업(안)’을 논의했다.(2025.12.23. 2025년 제24차 건강보험정책심의워원회) 이는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만성질환자가 많아지면서, 이들을 거주하는 곳에서 적절히 관리하자는 취지라 한다. 시범사업은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
‘통합돌봄제’는 1차 의료 개념과 맞물리는 개념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는 1차 의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1차 의료란 치료(curing)가 아니라 양호(caring: 養護)를 뜻한다. 치료는 질병을 대상으로 하지만, 양호는 넓은 의미의 보건이다. 보건은 반드시 질병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미리 예방하는 예방의학을 포함한다. 또 질병이 있다고 하더라도 약물이나 수술 등 임상치료를 전제로 하지 않고, 자연치유(자연이 갖는 저항력)에 의지한다.
이런 1차 의료가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의사들이 관장하는 한국의 건강보험은 병원과 의사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그 혜택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치료가 아닌 양호를 전제로 하게 되면, 반드시 의사의 손을 거칠 필요 없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가 있다. 의사들이 보건에 속하는 양호까지 관장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차 의료가 존재하지 않던 한국에서 의사들이 갑자기 1차 의료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통합돌봄제’를 시행하면 돈이 투입될 것인데, 그 돈을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주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지금까지 ‘어르신(노인) 돌봄’은 지자체마다 들쑥날쑥, 투입되는 예산이나 체계가 일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의사들이 ‘1차 의료’와 함께 ‘동네 주치의’ 제도를 갑자기 떠들어대는 것이 정부의 ‘통합돌봄제’ 시행에서 투입될 돈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의 의사들이 ‘1차 의료’, ‘동네 주치의’라는 용어에 담고 있는 내용들은 다소간 왜곡된 것으로서, 의사들 중심의 이기주의에 부합하는 편향성을 가진 것이다. 그 편향성은 당장에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전부터 있어 왔다.
한국 의사들이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1차 의료(양호)가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사실을 은폐 왜곡해 온 것이 그러하다. 의료의 양호(caring) 개념을 치료(curing)로 획일화하고는, 의료의 질적(양호와 치료) 차이를 병원 규모(소, 중, 대)간의 차이로 개념을 전도하여, 1차 의료기관(동네), 2차 의료기관, 3차 의료기관 등으로 대체해 버렸다. 이에 1차 의료로서의 ‘양호’ 개념 대신 1차 치료기관(동네)의 ‘치료’가 들어서게 되었다. 급기야 양호의 개념은 치료와의 질적 차이가 무시된 채 뒷전으로 밀려나고, 치료하는 의료기관의 대, 중, 소 규모 간 전달 쳬계만 부각되게 되었다. 그러나 1차 의료는 1차 의료 ‘기관’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OECD 통계자료가 밝히고 있듯이, 한국에 1차 의료(양호, 보건)는 현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에서 이른바 ‘1차 의료(기관)’라고 하는 것은 질병의 치료와 구별되는 개념으로서의 양호가 아니라, 단순히 환자와의 1차적 접촉(first contact)을 의미할 뿐이고, 돌봄(서비스)의 내용은 의료기관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겠으나, 죄다 질병 중심의 치료이다. 그러니 환자(의료소비자)는 구태여 1차 의료 ‘기관’인 동네 의원을 찾을 이유가 없다. 어차피 치료를 위해서라면 큰 병원이 유리하다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같은 상황에서는, 동네 의원들 간에 환자를 유치하려는 경쟁이 불가피하게 일어나게 된다. 그로 인해 진단상에서 파생하는 다소간의 과장 및 축소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1차 의료 개념을 의사와 병원 중심으로 전도해 버린 것 같이, 지금 의사들이 통합돌봄의 기능을 ‘동네 주치의’ 중심 개념으로 수렴하려 한다. 의사들이 양호와 보건의 기능까지 관리해야 할 것처럼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치의의 역할은 몸의 상태를 진단하고, 가능한 양호의 방법 등을 조언하는 데서 그쳐야 하고, 그다음 구체적 양호의 형태는 양호 받는 당사자의 기호와 간호 인력이 제공하는 돌봄의 질의 문제로 전환해야 하게 된다.
양호로서의 1차 의료는 그 특성으로 보아 공공부문의 주요 기능이다. 따라서 공공부문이 주요 역할을 해야 한다.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에 있는 의사, 간호사, 기타 보건의료인력이 1차 의료 제공의 역할을 한다.(참조: 송건용, 1차 의료(1次醫療)의 발전방향(發展方向), 보건사회연구, 12(1), 1992, 9쪽)
양호 개념으로서의 1차 의료는 약물의 주입을 원칙적으로 배제한다. 주치의의 역할은 예방과 양호(caring) 기능이 강화된 포괄적인 것이다. 돌봄의 대상은 질병을 갖는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로 확대하고, 그 목적은 건강향상에 대한 기여, 질병의 조기 발견, 나아가 애초에 질병 자체를 예방(예방의학)하는 데 있다.
환자(피간병인) 등록제가 있으나, 등록된 환자는 의사 관리하에 전속되는 것이 아니다. 이때 환자는 간호, 물리치료 등 다양한 형태의 돌봄을 직접 요구하여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영국 등 유럽에는 간호사가 병원에만 매여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개업할 수 있다. 의사가 병원을 통하지 않고 개인 영업할 수 있듯이, 간호사도 마찬가지로 개인 영업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의료와 간호는 서로 겹치는 개념이 아니라 별도의 고유 영역을 갖는다. 1차 의료의 양호, 보건의 영역은 의사, 혹은 동네 주치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건강 지키기는 이미 발생한 질병에 대한 전문의의 치료 행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 간호업자들은, 병원의 개입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독립된 협회를 만들어 상호 연대하면 된다.
‘통합돌봄’ 사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간호 혹은 간병인력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금 병원을 통하지 않고서는 환자와 거래할 수 없도록 금한 법제하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간호사는 이직율이 높다. 이들은 개인 개업을 통해 좀 더 나은 근로환경을 구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환자는 더 나은 봉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간호사뿐 아니라 각종 간호보조 인력도 마찬가지로 노동자로서의 건강권, 노동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 참고로, 노령의 인구가 다수 종사하는 병원 간병노동자의 경우, 노동조건이 열악하다. 파견, 도급, 계약직의 간병인도 있으나, 인력소개업체를 통해 일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되는 이들도 있다. 보건복지부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병원 간병노동자 응답자의 52.6%가 24시간 종일제로 일하고, 평균 취침 시간은 4.38시간, 연속근무일수는 11.64일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임금, 노동시간 등 간병업무의 기준’도 없고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 있다. 최근(조사 시 기준) 석 달간 월 평균 급여는 최저임금(약 월 209만)에 못미치는 약 175만 원이었다.(한겨레, 2025.12.22.)
강재헌(성균관의대 가정의학과)은 ‘동네 주치의’ 제도를 거론하면서, 인력수급의 방편으로, 은퇴 의사를 일반의사(GP: 전문의로서의 기능을 가진 의사가 아니라는 뜻)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어디서 진료를 받아야 할까?”, 녹색소비자연대 주최, 의료소비자활동가 교육 제2강, 한국 YMCA연합회 A 스페이스, 2025.12.23.)
동네 주치의로서의 일반의사(GP)가 필요하면, 당연히 새로운 인력을 양성, 보급하자고 나서야 할 것인데, 의사 증원 필요성에 대한 양해가 의사들에게는 추호도 없어 보인다. 그나마 현재로서 넉넉지도 않은 의료 인력으로, 질병 치료뿐 아니라, 양호, 보건의 영역까지 아울러 관장하려는 하는 것은 과욕이라 하겠다.
의사의 주의의무 태만은 과로한 노동과 인력부족에 크게 기인한다. 이는 과로에 부대끼는 간호사의 경우 환자에 대한 돌봄이 소홀해질 것이라 예상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의사 수 늘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새로운 인력을 공급하기보다 오히려 퇴직 인력을 활용하자고 하는 것이 그러하다.
한편,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의료개혁TF(특수임무 팀)에서 주최한 ‘모두를 위한 의료개혁 성공을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논쟁점들’(서울대 우석경제관, 2025.12.12.)의 토론회에서, 발제에 나선 오주환(서울의대 교수)은 윤석열 정부의 의사 수 증원과 함께 이재명 정부의 공공의료 강화정책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피력했다.
오주환은, “이재명 정부는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피력하고 있으나 뒷받침하는 정책적 준비가 매우 부족하다”, “정책 효과에 대한 실증적 근거가 없고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위험관리가 부족”, “공공의료가 지역 의료격차 해소나 필수의료 확충이라는 목표를 통해 달성돼야 할 ‘결과’로 보는 시각이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문제를 해결할 ‘수단’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우려”, “공공의료를 도구적으로 보는 사고에 대해서는 상당한 합리성을 갖춘 이견이 존재한다”, “윤석열 정부가 ‘의사 수’를 만병통치약으로 사고한 것과 유사한 오류로, 이재명 정부가 ‘공공의료’를 동일하게 만병통치약으로 사고하고 있을 가능성이 부정되기 어렵다”등 견해를 개진했다.(한국경제[MSN], 2025.12.18.)
위 발언의 핵심을 추리면, 윤석열 정부의 의사 증원 시도같이 이재명 정부의 공공의료 지향 정책은 잘못된 것, 공공의료는 필수의료 확충에 따르는 결과로서 와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오주환의 견해와 달리, 의사 증원 시도나 공공의료 정책은 각기 그 자체로서 잘못된 것이라 보기 어렵다. 의사 증원은, 윤석열 정부와 무관하게, 다소간에 필요한 것이다. 지난해(2023) 3월, 한 여론조사업체(메트릭스) 조사에서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응답은 84%에 달했다. 일반 국민 여론 차원에서는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방향성에 큰 이견이 없다는 뜻이다.(한국경제, 2025.12.25.)
또 공공의료 진입을 위한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따로 준비를 하지 않아도 방향을 전환하면 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치료에서 양호로 방향을 전환하면, 많은 비용과 많은 준비가 없어도, 크게 돈 안 드는 자연의 치유력(self care)이 그 공백을 메꿀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오주환은 공공의료가 필수의료 확충에 따른 결과로서 와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다. 공공의료는 필수의료와 같은 개념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인 것이고, 전자가 후자보다 더 광범위하다. 공공의료란 치료(curing)로서의 필수의료를 넘어서서, 양호(caring)의 개념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양호, 보건의 영역은 오주환 등 의대교수가 죄다 도맡아서 교통정리 하겠다고 나설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한국경제 ‘데스크 칼럼’에, “의대 증원 문제, 정치는 빠져야”라는 표제의 기사가 실렸다.(임도원 바이오헬스부장, 2025.12.24.) 이재명 정부의 의대 증원 관련하여, “정치적 공방을 넘어서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인데, 제목이 “정치는 빠져야” 하는 걸 보면, 정치계에서 왈가왈부하지 말고 “의사들에게 맡겨 놓으라”란 뜻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 공공의료가 100%를 차지하는 영국에서는 의사 수 등 의료정책을 지역(의료지역구)의 다양한 직업, 계층 사람들이 모여 함께 결정한다. 의사, 간호사, 물리사 등 의료 직역 관련 인사는 물론, 지역의 시민들이 함께 모여 지역 의료 현안을 의논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의료는 의사들만의 배타적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들이 의사 증원 수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은 각 지역 혹은, 필요에 따라, 전국적 규모의 정책의 일환이어야 하는 것이므로, ‘정치는 빠져라’라고 쉬 말할 수가 없다.
“의대 증원 문제, 정치는 빠져야”라는 한국경제 기사의 표제는 그 자체로서 의사들의 독선을 보여준다. 의사 집단은, 의대 증원은 정부에서 건드리지 말고, 의사들이 이른바 ‘의료안전망’이라는 미명하에 요구하는 ‘의사 형사면책특례’는 정부가 개입해서 관철시켜 줄 것을 앙망하고 있다. 의사들이 필요해서 요구하는 것은 정부가 개입하고, 그렇지 않은 의대 증원 같은 것에는 정부가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겠다.
다른 한편, 이재명 대통령이 의사들의 의료지원비가 적어서 고생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의사들이 의료계의 고충을 알아주어 감동했다는 취지의 ‘짤(막한 동영상)’이 회자한다. “제가 한 20년 전 뇌사 어린이에 대해서 의사들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해본 일이 있는데, 나중에 미안해서 못 하겠더라고요. 의학책에는 5분마다 저산소증 여부를 체크하고 산소포화도 체크하고 복잡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그거 하나도 못 지켜요. 그 후에 내가 들어보니까 아이 출산하는 데 지원의료비가 얼마 되지 않더라...” 한 것이다.
이재명의 위 발언은 일탈하는 현 한국 의료계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의학책에는 5분마다 저산소증 여부를 체크하고 산소포화도 체크하고 복잡하게 돼 있는데, 의사들이 그거 하나도 못 지키더라”고 한 것이 그러하다. 현실적으로 의사들이 지침을 안 지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 환자들의 안전에 치명적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은 이 같은 사실을 돈의 문제로 연결시켰다. 지원의료비가 얼마 되지 않더라고 한 것이다. 의사들이 지침을 지키지 못한 것이 받는 수가가 적어서 그렇다고 이재명이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의료 수가가 아니라 의사 집단의 권력 추구에 있다. 의료 수가보다 더 근원적 문제는. 당장에 의사 수를 늘리지 못하게 하는 것, 간호사를 병원에 종속시키고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 두는 것이 그러하고, 지금에 와서 양호, 보건 영역까지 죄다 장악 관리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 또한 그러하다.
의료를 국가가 책임지고 의사는 공무원으로 봉급을 받는 영국은 국가 ‘보건’제도(National Health System)라고 하지, ‘의료’제도하고 하지 않는다. 의료에 속하지 않는 더 광범한 보건의학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약물(2차 의료)과 수술(3차 의료)이 아닌 1차 의료(자연치유 [self care])의 개념으로 수렴된다.
한편으로, 부족한 인력의 소수 의사들이 양호, 보건의 영역까지 관장하려고, 1차 의료의 기능 및 ‘동네 주치의’ 역할을 왜곡하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정작 ‘돌봄’의 대상으로서의 이해 당사자인 의료소비자, 피간병인들 측은 이런 사실에 대해 태무심하다. 제약회사의 로비로 약이 남용되고, 필요 없는 수술로 과잉진료 및 사망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잠재적 가능성 앞에서, ‘돌봄’의 대상이 되는 이들의 태무심은 스스로를 무방비 상태로 방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과 돈을 추구하는 의사를 탓하기 전에, 의료소비자 자신의 무관심과 방만에 대해 우선 반성이 필요하다.
의사들이 병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 연후에, 어떤 치료방법을 선택할 것인가는 의료소비자가 결정하고, 여기에는 자연치유의 공간이 들어가야 한다. 영국의 1차 의료는, 주치의가 모든 보건 양호의 영역까지 관장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이때 주치의의 역할은 약물을 쓰지 않고, 보건, 섭생, 자연치유 등으로 건강을 회복하도록 돕는 데 그친다.
핀란드에서는 감기에 걸리면 병원, 의사, 약이 아니라 건강보험공단에서 직접 환자에게 돈을 지급하고, 산림욕을 지원한다. 맛있는 것 사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고, 산림에 묻혀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면 병이 절로 낫는다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치료법은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그 신전에 들어가 잠을 자는 것이다. 의학의 아버지 고대 히포크라테스는 식이요법을 주로 썼고, 약물의 사용을 가능한 한 금기시했다.
‘통합돌봄’은 탈병원, 탈의료, 탈의사를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한다. 병원 치료는 재택(在宅)의 개호(介護: 재택 혹은 개별적 양호)로, 또 전문의에 의한 치료는, 일반의(醫) 및 양호, 보건, 자연치유의 영역으로 환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동네 주치의’는 은퇴에 즈음한 의사들을 재활용하는 자리가 아니다. 통합돌봄은 돌봄의 대상이 되는 이에 대한 양호와 함께, 돌봄의 용역을 제공하는 각종 간호 인력의 노동의 질 및 노동환경의 개선을 우선한 것이어야 한다.
‘1차 의료’, ‘주치의’ 개념의 핵심을 왜곡하고, ‘통합돌봄’을 기존의 의료체계로 편입하려는 의사들의 시도에 대해 다소간 경계의 시선을 거두어서는 안 되겠다. 동시에 질병 치료와는 별개로 양호의 영역을 관장하는 간호사로 하여금 개인 개업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간호사의 개인 개업은 피간병인들에게 좀 더 나은 양질의 간호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병원에 고용된 간호사들에게도 더 나은 노동환경과 임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경합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